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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적합한 사람
말씀: 이현래 목사 -
성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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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11.적합한 사람
무슨 일이나 그 일을 완성하려면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이 있다. 크고 정밀하고 어려운 일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소망으로서의 메시아가 어떤 자격을 가져야 하는가? 더군다나 온 인류를 구원하려면 어떤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필요한가? 어떤 자격의 사람이 필요한가? 하나님은 면밀하게 검토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사렛 사람 예수! 목수의 아들, 그 사람이 과연 이 어마어마한 일에 메시아로서 적합한 사람인가?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하던 어부들이었다. 과연 이 사람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적합한 사람들이었던가? 또 더 한다 해도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불구자, 약한 사람들 뿐이었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하나님이 바라는 적격자였을까? 그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십자가를 지고 내려오지 못하고 죽었다. 유대인에게 조롱받았고,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았다. 왜 그랬는가? 이 사람으로서 적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에 적합하다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20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우리가 아는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은 그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깊은 곳은 만유가 포함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위대해서가 아니고 놀라운 사람이어서도 아니다. 반대로 모든 인간이 다 싫어하는 그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이 만유를 포함하고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인류의 구원자가 된다는 말인가!
예레미야 31장에는 분명히 “그날이 오면 어른으로부터 아이들까지 다 하나님을 알 것이고,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을 알라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온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언제 와도 이 나라는 오고야 말 것이다.
예수는 여기에 적합한 사람이다. 만유가 포함될 수 있는 사람으로서 가장 적합한 사람이다. 하나님 아들로부터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밑바닥까지 모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야말로 누구도 이 운명에 포함되지 않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 심지어는 식물까지라도 이 사람의 운명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사람은 만유의 구원자가 될 사람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것은 위대해서가 아니다. 위대한 사람에게는 참여가 불가능하다. 특별한 사람들에게는 참여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는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하나님이 인정하신다면 누구나 다 참여가 가능하다. 이 사람의 가치가 그의 생애를 마지막 하는 이 자리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이다.
그와 우리가 연합하려면 너무나 쉽고 당연하다. ‘그가 나고 내가 그다.’ 이렇게 말해도 될 만큼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만유는 모두 그 사람 안에 있는 것이다. 그 사람과 연합하고, 그 사람과 하나 되고, 그 사람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잃어버린 사람을 찾고 있다. 심히 보기 좋다고 말했던 그 사람을 다시 찾고 있는 것이다. 심이 보기 좋은 사람이 누군가? 만유를 포함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를 포함하는 사람이 심히 좋은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은 이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창조를 맡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제 위치로 돌아간다면 사람은 얼마나 하나님에게 필요한 존재인가. 이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은 나타날 수가 없고, 이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도 없다. 무엇이 더 귀중한가?
위대하다고 되는 것인가? 아니다. 위대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거역하고 떠났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잃어버린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아멘!' 하고 들어오면 예수와 즉시 연합되고 하나 되고 동행하게 된다.
더 이상의 길이 있는가? 또 다른 길이 있는가? 기웃거리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잡아야 한다. 길이 있으면 말하라. 대책이 있으면 말하라.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대책이 필요하다. 아니라 함만 필요한 게 아니고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대책이 없으면 이 대책을 따라야 한다. 대책이 없으면 이 길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대책이 없으면 겸손하게 자기를 내려놔야 된다. 부르심에 응해야 된다. 찾으심에 응해야 된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찾으시는 하나님께 ‘예, 내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되는데 누가 ‘내가 여기 있습니다.’ 할 수 있는가?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내가 여기 있습니다.’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진실로 나는 인생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으로 내가 나를 고백하였고, 무엇으로 내가 내 얼굴을 내놓을 수 있는가? 예수 안에 있는 나, 그와 연합한 나, 그 얼굴밖에는 하나님이 찾지 않으신다. 구원은 지금이다. 구속은 지금이다.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다. 지금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